로버트 플래허티, 프랜시스 플래허티, 모니카 플래허티
다큐멘터리의 선구자 로버트 플래허티와 아내 프랜시스 플래허티는 남태평양 사모아 섬 원주민들의 일상과 문화를 기록한 〈모아나〉를 제작한다. 수십 년이 흐르고, 그들의 딸이 다시 사모아 섬을 찾는다. 〈모아나〉에 부재한 소리를 담아내기 위해서다. 그렇게 〈모아나〉는 유성영화로 재탄생한다.
<북극의 나누크>의 성공 이후, 로버트 플래허티는 1923년부터 1924년 사이 2년 동안 가족과 함께 남태평양의 사모아섬에 체류한다. 폴리네시아인들의 일상과 문화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가 성인식을 앞둔 모아나라는 청년을 중심으로 그의 부족 사람들의 사냥, 채집, 춤과 음악,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의례를 기록한 <모아나>는 1926년 공개된 이후, 존 그리어슨이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출하게 한 영화로 영화사에 기록되었다. 또 <북극의 나누크>에서처럼 사모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옛 문화를 연행하게 하는 재현 방식을 활용한 접근에 관한 논쟁거리를 영화사에 남겼다. <모아나 위드 사운드>는 <모아나>로부터 50년이 지난 후 플래허티의 딸인 모니카 플래허티가 완성한 유성영화 버전이다. 모니카 플래허티는 사모아섬을 찾아 섬의 갖가지 소리와 원주민들의 목소리, 노래를 녹음하여 원작 무성영화 위에 정교하게 덧씌웠다.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에 존재하는 50년의 시차는 실재의 질료를 창조적으로 처리하는 방식과 지표성(indexicality), 본래성(authenticity)의 문제 등 다큐멘터리의 오랜 화두를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모니카 플래허티의 작업 과정을 사미 반 잉겐 감독이 <남태평양의 모니카Monica in the South Sea>로 만들어 공개했다.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J. FLAHERTY
로버트 플래허티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장편 다큐멘터리인 (1922)를 제작한 다큐멘터리 역사의 거장이다. (1926), (1934), 그리고 (1948) 등을 통해 플래허티는 자연에 저항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구현했다. 더불어 몇 편의 단편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그의 죽음 이후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플래허티의 이른은 여전히 영화사의 가장 영향력있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프랜시스 플래허티Frances H. FLAHERTY
(1926)의 공동제작자이자 사진작가였던 프랜시스 플래허티는 남편 로버트 플래허티와의 평등하고 능동적인 창작자로 동행했다. 그녀는 플래허티 영화에서 편집 작업으로 깊게 관여했다. 그녀의 사진과 글은 널리 출판되었고, 로버트의 이름으로 출판된 「The Making of Moana: 「Samoa」(1929)와 「The Odyssey of a Filmmaker」(1960)라는 두 권의 책을 썼다. 프랜시스 플래허티는 모니카 플래허티를 포함한 세 딸의 어머니이다.
모니카 플래허티Monica FLAHERTY
「Samoa」(1929)와 「The Odyssey of a Filmmaker」(1960)라는 두 권의 책을 썼다. 프랜시스 플래허티는 모니카 플래허티를 포함한 세 딸의 어머니이다.
로버트 플래허티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장편 다큐멘터리인 (1922)를 제작한 다큐멘터리 역사의 거장이다. (1926), (1934), 그리고 (1948) 등을 통해 플래허티는 자연에 저항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구현했다. 더불어 몇 편의 단편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그의 죽음 이후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플래허티의 이른은 여전히 영화사의 가장 영향력있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