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어디에도 없는>은 <어두운 밤 - 들풀>(2022)의 후속편으로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육로 국경을 넘으려는 이민자들을 소재로 한 <어두운 밤> 연작의 2부에 해당한다. 1부가 모로코 멜리야의 지정학적 관점과 청년들의 상황에 초점을 두었다면, 2부는 1부의 주인공들보다 어린 아홉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미성년들에 초점을 둔다. 이미지의 색조와 텍스처는 전작에 비해 더 시적으로 변했다. 서유럽의 디아스포라와 이주 정책, 서구와 적대적 혹은 대립적 의미로 해석되는 아랍-이슬람의 충돌을 보여준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정치적 의제에 대한 투지와 시적인 이미지를 결합한 주제들을 탐구해 온 실뱅 조지 감독은 흐릿한 밤의 어둠 속에서 불타오르는 소년들의 행적에 동행하여 서유럽에 산업 노동자로 유입되어 온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운명을 183분의 기나긴 여정으로 구성한다. 쟁점을 파고드는 그의 집념은 르포르타주와 시적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방법론을 유려하게 결합하여 대상에 대한 밀착성을 유지한 채 대립과 갈등의 영역으로 인식된 장소의 의미를 탐구한다. 암울한 흑백 이미지로 구현된 다수의 장면들은 미추(美醜)의 경계에서 땅의 끝에 선 자들의 실존적 상태를 증언한다.
실뱅 조지
이탈리아의 법의학자 크리스티나 카타네오는 끊임없이 메일을 쓴다. 신원미상의 상태로 영안실에 안치된 이들에게 이름을 찾아주는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매일 학생, 동료들과 함께 노숙인이나 부랑자와 같이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과 유럽에 오기 위해 지중해를 건너려던 난민들의 시신을 마주한다. 이런 무연고, 신원미상의 죽음들은 근대 국민국가의 한계와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럽 각국의 기관이 크리스티나의 호소를 외면하는 것이 보여주듯, 국민이 나닌 존재들에 대해서는 가장 기본적 인권도 보장하지 않기/없기 때문이다. 두 공동 감독은 유려한 편집과 섬세한 음악에 더하여, 마치 법의학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카메라로 크리스티나의 고군분투하는 얼굴을 담아낸다. 그리고 크리스티나의 클로즈업을 통해 단순히 주인공을 특정하거나 강조하는 것 이상을 성취한다. 역설적으로 결코 얼굴을 보여줄 수 없는, 해안가나 땅속에 남은 흔적으로만 대변될 수 있는 이 작품 속 또 다른 주인공들의 존재를 환기하는 것이다. <신원미상자의 이름>에 흐르는 클로즈업과 흔적 사이의 긴장은, 고유명을 잃고 최소한의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행동을 호소한다. 그리고 경고한다. 그것마저 하지 못하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겠냐고.
발렌티나 치코냐
마티아 콜롬보
블러드 하운드는 사냥의 표적이 되어 부상을 당한 동물을 찾도록 훈련된 개를 말한다. 파리를 질주하는 혈액 수송차, 개복 수술을 담은 사실적인 영상에는 피를 찾는 이미지들이 출몰한다. <블러드 하운드>는 질병과 죽음, 오염, 전염에 관한 시적인 이미지들로 보는 이들을 매혹한다. 여기서 죽은 사슴의 피를 찾아 핥는 사냥개에 비견되는 것은 변기에 흘러내리는 생리혈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충동, 피에 대한 탐닉이다. 야미나 주타트 감독은 저널리스트 시절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보이스오버로 전달되는 나레이션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피가 얼마나 필수적인 요소인지 상기시킨다. 이 붉은 액체와 인간, 특히 여성의 관계는 다양한 인물들을 연결하는 서사의 라인을 만든다. 영화는 혈관을 관통하는 피의 형이상학적 의미, 즉 구원이기도 하고 치명적인 상처, 죽음이기도 한 액체의 힘에 대해 성찰한다. 영화의 또 다른 개성은 다큐멘터리와 호러, 파운드 푸티지, 초현실주의를 넘나드는 독특한 질감에서 나온다.
특히 긴 목을 물속으로 내던지는 백조와 이식 수술을 위해 움직이는 피 주머니, 대규모 테러 공격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클로즈업으로 구축되는 평행관계 등 반대되는 이미지를 우화적으로 결합한 묘사는 그 정점이다.
야미나 주타트
왕빙
감독은 재봉사 사촌과 교류하면서 그녀의 현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대화는 이 영화의 바탕이 된다. 영화를 찍으면서 어떤 장면을 설명했을 때 재봉사는 종종 자신이 원하는 다른 것을 제시했고, 감독은 그녀가 감독의 픽션을 자신에게로 가져가 자기 현실을 채워 넣었다고 말한다. 이는 촬영 관계에 있어 카메라를 든 이가 갖게 되는 권력을 경계하며 감독이 찾아낸 해결법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두 작가라 할 수 있는 감독과 재봉사 피에레트가 인물의 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이해와 존중, 그리고 애정은 재봉 일이 맘바르에게 주는 복합적인 의미가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한다. 능력을 발휘하고, 가족을 돌보며, 이웃을 달래고, 세상과 접속하는 통로가 되어주는 재봉은 맘바르가 자기 삶을 지켜내는 열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묵묵한 열정이 중심 테마여서일까, 피에레트에게 닥친 불운과 그녀를 중심으로 한 주변의 어려운 현실들은 맘바르를 압도하지 못한다. 복지, 가난, 육아, 교육, 관계 등등 카메룬, 그리고 전 세계 사회가 해결해 나가야 할 무수한 문제들이 맘바르를 통해 일깨워지는 가운데, 그것을 해결해 가는 일은 맘바르가 정직하게 뚜벅뚜벅 이어가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단단한 리듬을 배우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로진 음바캄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역사적 자부심을 안고 있는 386세대는 이제 한국사회의 폐단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거나 응답해야 하는 기성세대이다. 〈애국소녀〉 감독의 아버지는 합리적인 행정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포부를 가지고 공무원이 되었고, 어머니는 페미니스트 활동가가 되었다. 부모를 향한 감독의 믿음은 스무살이 되던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하고, 감독은 부모의 자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이 사회를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기 위한 시간을 보낸다. 지난 단편 〈핑크페미〉(2018)에서 페미니스트 어머니에 대한 부담이나 반발을 딛고 스스로 여성의 삶에 대한 본인만의 태도를 정립해가는 과정을 보여줬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의 삶을 소화하고 자신의 사회적 책임 앞에 서기 위한 여정을 밟는다. 단지 소중하게 감싸거나 손쉽게 내칠 수 없는 가족 관계에서 오는 고민이 영화 안에서 지속되는 가운데, 사적인 인간관계에 가져야 하는 이해의 태도와 공적인 사회관계에 가져야 하는 비판의 태도를 성숙하게 분별하는 사회를 위한 우리의 과제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남아름
‘제주4.3사건’ 동안 가족을 잃고 진압을 피해 숨었다가 반대로 생존을 위해 토벌대 활동을 하기도 했던 할아버지의 역사적 경험을 듣는 인터뷰는 그 내용도 내용이지마는 인터뷰 설정에서 흥미롭다. 인터뷰 세팅에 제일 중요한 요소는 술상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술상이 놓이는 집안 곳곳은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조성하는 주요 요인이 되어준다. 더불어 카메라는 대개 다른 물건들을 피해 한편에 설치된 것 같은 위치에 배치되는데, 이는 증언을 요구하는 인터뷰이와 그에 맞춰 말하는 인터뷰어의 관계에서 누락되곤 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인터뷰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우리는 제주4.3사건에 관한 또 하나의 귀한 증언을 얻는다.
양지훈
최종호
<고다르>는 인습타파의 혁신가였던 장-뤽 고다르에게 보내는 질문의 형식을 취한다. 구조적으로는, 1인칭 화자가 화두로 삼은 고다르의 영화들과 질문, 해안가의 퇴적층 바위, 절벽, 바다, 파도, 식물 등을 촬영한 풍경 쇼트 그리고 고다르를 해명하기 위한 책들, 텍스트의 교차가 뼈대를 이룬다. ‘언어의 세계와 비 언어의 세계’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 말은 언어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언어로 말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불가능한 영화’를 통해 보여준 고다르의 행적을 요약한다. <언어와의 작별>(2014), <이미지 북>(2018), <필름 소셜리즘>(2010), <비브르 사 비>(1962),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1980), <아워 뮤직>(2004), <사랑의 찬가>(2001)가 순서대로 제시되면서 각 영화에서 파생한 의문과 질문이 제시된다. 김응수 감독은 기존의 형식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고다르 스타일을 빌어 몽타주, 텍스트와 이미지의 조합, 컬러의 전환을 주되게 사용한다. <고다르>는 영화에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이 거인이 불가능한 영화를 상상하는 화자에게 남긴 메시지이다. 올해 ‘에세이’ 섹션에서 상영하는 고다르의 마지막 영화 <결코 존재하지 않을 영화의 예고편>과 함께 보기를 권한다.
김응수
2016년 가을 성주군 소성리가 사드 포대 후보지로 결정되고, 2017년 소성리에 배치가 강행된다.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김천/성주〉(2017)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사드 배치를 막기 위한 지역 주민들의 싸움을 기록한 김상패 감독은 이후 소성리로 귀촌을 결행한다. 그렇게 소성리 주민이 된 그는 직접 마늘과 콩농사를 짓는 한편, 불과 80명 남짓한 노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일상과 대소사를 카메라에 담아나간다. 일본 독립다큐멘터리의 전설, 오가와 신스케를 떠올리게 하는 김상패 감독의 실천의 핵심에는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노작은 투쟁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급급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도토리묵과 참외장아찌를 만들고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관찰하고, 그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그런 그에게 노인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일생을 들려준다. 관찰자이자, 참여자이며, 경청자로서 그가 얻어낸 그 공동체의 감각은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가 오랫동안 지켜온 정수이기도 하다. 감독과 남다른 유대를 형성한 봉정할배가 그에게 쌈짓돈을 쥐어주며 바르게 살라고 당부하는 장면은 그 어떤 사상가나 지식인의 세련된 말보다도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김상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