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연
World Premiere
무언가가 있었던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말로, 기억으로, 애도로 흡수된다. 광주의 녹두서점과 홍콩의 아방가르드 서점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저항의 움직임 한 가운데에 있었다. 서점이 있던 자리에 손가락에 스치는 종이 소리와 기억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책의 목소리>는 1970년대 홍콩의 아방가르드 서점과 1980년 광주 녹두서점의 기억을 소환하여 병치한다. 각각 홍콩의 좌파 운동과 5.18 민중항쟁의 구심점이었던 두 서점을 연결하는 고리는 책이다. 책의 형식과 독서의 방식을 차용하여, 두 서점이 책을 만들고 배포하며 사람들을 조직하고 저항을 이끌었던 역사를 되살려낸다. 주목할 점은 젊은 신진 감독의 이 단편이 지금은 사라진 두 서점의 자리를 신화화되고 박제된 역사로 채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침묵 속에서 두 서점이 남긴 이미지와 텍스트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목소리들이 등장하여 서로 교차하다 중첩되고, 끝내 소란으로 이어진다. 역사는 진보는 끝없는 대화, 그로부터 발생하는 소란한 뒤섞임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비판적 감각으로 충만한 작품이다.
권수연KWON Sooyeon
1990년생.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서로 다른 텍스트들 간의 대화적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는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