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레이캬비크의 한 요양원 노인들을 담는다. 영화는 그들이 맞는 계절의 변화와 일상을 관찰적으로 담지만, 특정 인물이나 극적 사건을 다루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노인들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감정과 취향과 움직임에 주목한다. 개인의 성격에 따라, 함께한 사람에 따라, 신체의 노화 정도에 따라 노인들의 일상은 정적이나 다양하다. 침대에 누워서도 헤드셋을 끼고 있는 노인, 침구 정리를 깨끗이 하고 꽃을 곁에 두는 노인, 부부가 함께 요양원에 거주하며 아내에게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노인, 휠체어에서 음악을 듣고 손으로 춤을 추는 노인, 오랜만에 공동 식사 시간에 나와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노인 등. 영화는 이들의 조용한 일상을 겹쳐내면서 다층적인 그러나 보편적인 노인의 일상 리듬을 보여준다.
아날로그 16mm 필름을 선택한 영화는 손쉽게 반복 촬영이 가능한 디지털 카메라 대신, 필름 특유의 아날로그 질감과 ‘지금 순간’을 유일하게 포착한다. 16mm 필름과 노인의 몸은 서로를 반영한다. 그렇게 영화는 삶의 마지막 단계를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을 묵묵히 살아내는 생(生)의 단계로 다룬다. 실제 영화 초반, 촬영의 의미를 묻는 한 노인의 물음에 영화는 ‘삶’에 대한 영화라고 답한다. 고요한 풍경, 교차하는 낮과 밤, 계절의 흐름. 노인들의 움직임과 공간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누구나 다다를 삶의 단계를 담백하고도 명상적으로 마주한다.
이르사 로카 팬버그
다비드 빔
바위처럼 단단한 여성 정치인 샤베르디가 바위처럼 견고한 권위주의에 맞서는, 강력한 여성주의 영화이다. 개인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부조리한 정권을 고발하는 메시지를 담은 이 영화는 인내와 끈기로 이룬 다큐멘터리의 최고 성취를 보여준다.
사라 카키
모하마드레자 에니
카말 알자파리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레바논 내전 중 격동의 유년기를 보낸 소녀의 이야기를 베이루트의 미니어처 세트와 피규어를 사용하여 재구성한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이다. 공동 작가인 피다 비즈리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자랐고,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지옥에 관한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곤 했다. 죽음을 하찮게 여기는 현실은 그녀에게 삶의 가치와 전쟁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성인이 된 피다는 비극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 즉 민병대와 적군, 동맹군의 증언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 재현 불가능한 광경을 재현하고자 노력한다.
미니어쳐 박스 모형으로 제작된 미시 소우주를 무대로 삼아 피다는 과거의 시간을 재평가한다. 사건의 당사자가 그 자신의 체험을 되짚어가는 수행적인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 <그린 라인>은 개인의 기억과 창의적인 시각 양식을 결합하여 역사적 성찰을 제공하고, 세계의 갈등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이 감동적인 여정은 기억과 역사를 융합하여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무고한 시민들, 특히 아이들이 견뎌내야 하는 참상을 회고하노라면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 어떤 이념도 유혈 사태를 감수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실비 발리요
영화는 손톱 깎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손톱과 상추 씨앗이 닮았다. 그리고 그 위에 할머니와 감독의 전화 목소리가 겹쳐진다. 감독이 안부를 묻고 할머니는 말한다. 이어 할머니의 집 마당과 감독의 건물 베란다가 나란히 또 비교되어 보여 진다. 사실, 영화의 주인공은 할머니와 상추지만 마치 “상치”처럼 겹이 많은 영화다.
토종 씨앗을 기록해온 설수안 감독은 이번에 오세봉 상추를 주목한다. 오세봉 할머니의 오세봉 상추, 마트의 채소가 아니라 누군가 정성을 쏟아 기르고 날씨와 땅이 영글게 하는 생명이다. 그리고 사람의 사연과도 닿아 있다. 할머니는 시집와서 친정어머니가 가져다준 상추 씨앗을 기르며 친정어머니를 생각한다. 나눠준 자, 기르는 자가 모두 존재하는 오세봉 상추씨를 감독이 받는다. 그리고 감독은 씨앗을 받은 할머니와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인다. 몸의 통증과 피아노 레슨에서 얻은 말들을 씨앗처럼 영화에 흩뿌린다. “약한 손가락의 힘을 기르는 것보다, 힘센 손가락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는 말처럼 힘을 뺀 영화이지만 그래서 힘이 있는 영화이다.
표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영화는 상추 씨앗이 상추가 되는 조용한 역동성처럼 내면의 소리와 움직임이 가득하다. 할머니의 이야기이자 씨앗에 대한 이야기이자 감독 자신에 대한 이야기인 영화는 결국 우리네 “살림 노동”에 대한 이야기이다.
설수안
조진석
한국의 광주극장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가운데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부아란 극장은 1998년 5월 자카르타에서 발발한 시위와 폭동을 증언한다. 족자카르타에 기반을 두고 인도네시아가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에 관한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 온 아리프 부디만 감독의 <시네마 속 5월>은 그 역사적 유사성을 접점 삼아 초국적 연결을 시도하는 기획이다. 당시 각각의 극장을 지킨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 영상이 디지털 작업을 통해 재가공되며 역사의 또 다른 측면을 복원한다.
시차와 지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두 사건을 연결하는 그것은 바로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국가 폭력의 경험과 함께, 영화의 본질 속에 내장된 정치적 가능성이다. 현실을 기록하고, 반영하며, 함께 보는 영화의 실천이 갖는 민주적 잠재력에 관한 비판적 사유의 결과물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아리프 부디만
최수빈 감독은 3주에 한 번, 항암 치료를 받으러 가는 어머니의 외출을 소풍이라 부른다. 가족의 암 투병을 소풍이라 부르기 전까지 분명 큰 슬픔과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풍>은 이를 호소하는 데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과감하게 생략한다. 대신 감독의 카메라는 어머니의 긴 일상 중 간식을 준비하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환우들의 모습에 집중한다.
이 선택은 가장 분명하고도 호소력 있는 서사적 행위이다. 삶의 고통과 난국을 이해하고, 혼란한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며, 이를 하나의 지혜로서 타인과 나누는 장치가 서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짤막한 분량의 로드무비에 동행한 이후 담담한 일상의 풍경을 지탱하는 삶의 의지와 대상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최수빈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한국 출신의 최진배와 미얀마 출신의 녜인 따진 부부는 미얀마에서 보내온 사진과 영상을 받는다. 그 속에는 군부 쿠데타 이후 자행된 폭력과 억압의 증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진배는 배달 플랫폼의 기사로, 녜인 따진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면서도, 부부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연대하는 활동을 이어간다.
임대청 감독은 5년에 걸쳐 제작한 첫 장편, <지금, 녜인>에서 쿠데타의 발발 이후 두 사람이 보낸 요동치는 시간에 동행한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관심은 쉬지 않고 이어지는 전쟁과 분쟁 뉴스에 묻혀 사그라들지만, 그들의 핸드폰으로는 계속해서 미얀마의 현실을 호소하는 영상 메시지가 전달된다. 당초 군부의 폭력과 민중의 저항이 담긴 푸티지를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감독은 지난하게 이어지는 미얀마의 정치적 국면 속에서 부부의 심리를 전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한국에서의 쉽지 않은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두 사람의 심리가 관찰과 극적 연출을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달된다. 그리고 우리는 투철한 활동가의 전형이 아니라, 흔들리고 비틀리면서도 자신들의 노력을 이어가는 인물들의 슬픔과 고뇌가 담긴 얼굴을 마주한다. 그 얼굴에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윤리적 실천의 시작일 것이다.
임대청
불의의 사고로 지체 장애를 갖게 된 선영은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고시생으로 살아간다. 동시에 그는 연로한 부모를 돌보며, 가족이 함께 살 집을 구하려 전전한다. 그 사이 그가 매달려 온 사법고시는 폐지되고, 그는 다른 선택지를 고민한다.
누군가는 막다른 골목이라 부를 법한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선영의 일상을 조용하게 따라가는 <가끔은 여정이 아름답기도 하다>는 제목 그대로 로드무비의 형식을 취하는 작품이다. 인터뷰와 내레이션 대신 동행과 관찰에 의존하는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는 휠체어와 차를 운전하며 부지런히 이동하는 선영의 모습을, 서사적으로는 그와 가족의 삶 자체를 일종의 여정으로 삼는다. 하지만 코로나19까지 겹쳐 그 여정은 한결같고 단조롭기까지 하다. 섣불리 아름다움을 말하기에 뾰족한 희망이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운전대를 잡은 선영의 옆모습, 그리고 조수석에 자리 잡은 카메라의 위치에 익숙해질 즈음, 우리는 선영이 그 기복 없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쉼 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깨달을 뿐이다.
섬처럼 고립되고 흩어진 가족과 친구, 옛 인연들을 잇는 선영의 움직임은 그 어떤 영화적 기교보다도 훌륭하게 영화의 주제를 역설한다. 다름 아닌, 삶의 무게에 짓눌려 멈추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 나가는 노력 속에 생의 숨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고한벌
<도라지 불고기>는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포수>로 한국경쟁 단편 대상을 수상한 양지훈 감독이 연출한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카메라를 든 ‘나’는 학창 시절 절친했던 아는 형을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한다. 아는 형은 재일 조선인으로 일본에 살고 있다. 아는 형의 가족,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며 감독은 먹고, 대화하고, 질문한다. 재일 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본과 한국 모두에게 부정당한 얼굴 없는 자아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도라지 불고기>는 영화가 재일 조선인을 재현해 온 스테레오타입에 도전한다. '도라지', '불고기' 2개 파트로 구성된 서사는 북한에 충성심을 가진 민족주의자의 이미지를 벗겨내면서 편견이 없는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려는 관점을 따른다. 특별히 2부 ‘불고기’에서 양지훈은 겹겹이 둘러친 프레임들을 성찰의 장치로 도입하여 대상이 스스로를 바라보도록 한다.
아는 형을 비롯하여 모든 재일 조선인 출연자들의 얼굴은 흐릿한 블러 이미지로 처리되었다. 출연자들의 신상에 대한 보호의 의미도 있지만, 강력한 함의는 존재를 부정당한 저들의 실체가 없는 아이덴티티의 시각화이다. '정체성 정치'로 불리는 주류의 재현 방식에 대하여 저항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 같은 양지훈의 작의는 도발적이고, 동시에 야심적이다.
양지훈
에디와 앨리스라는 두 명의 트랜스젠더 여성의 일상이 비대칭적으로 응답하듯 교차하는 <에디 앨리스>는 물과 필름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에디와 앨리스가 직접 방문하는 목욕탕과 바다의 출렁이는 물뿐만 아니라 그들의 침잠된 인식과 지각을 떠오르게 해 포착하려 할 때 영화는 파랗거나 빨갛고 또는 휘말리며 보라색이 되는 물결의 이미지와 필름 보관 장면을 삽입하며 다른 장면으로 전환한다. 이때 그들의 신체 이미지는 반짝이며 일렁이는 윤슬이 된다.
<에디 앨리스>는 자신의 신체를 탐색하고 여행하는 두 주인공, 카메라 앞과 뒤, 프레임 안과 밖, 제작진과 주인공, 가시와 비가시,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지속적으로 전환하고 어긋나면서도 응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전환과 횡단의 실험은 이미 완료된 작품과 관객으로까지 확장된다. 2024년 11월 처음 공개된 <에디 앨리스: 리버스>는 서사적으로 두 주인공 중 에디가 먼저 등장하고, 2025년 8월 공개된 <에디 앨리스: 테이크>는 앨리스가 먼저 등장한다.
제1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두 버전을 모두 상영한다. 같으면서도 다른 이 두 영화는 관객들이 본 것의 간격에 대해 대화하기를 요청하는 동시에, 현재 비가시화되어 있지만 잠재해 있는 바깥의 수많은 트랜스(젠더) 영화-신체들을 불러낸다.
김일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한국 출신의 최진배와 미얀마 출신의 녜인 따진 부부는 미얀마에서 보내온 사진과 영상을 받는다. 그 속에는 군부 쿠데타 이후 자행된 폭력과 억압의 증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진배는 배달 플랫폼의 기사로, 녜인 따진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면서도, 부부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연대하는 활동을 이어간다.
임대청 감독은 5년에 걸쳐 제작한 첫 장편, <지금, 녜인>에서 쿠데타의 발발 이후 두 사람이 보낸 요동치는 시간에 동행한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관심은 쉬지 않고 이어지는 전쟁과 분쟁 뉴스에 묻혀 사그라들지만, 그들의 핸드폰으로는 계속해서 미얀마의 현실을 호소하는 영상 메시지가 전달된다. 당초 군부의 폭력과 민중의 저항이 담긴 푸티지를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감독은 지난하게 이어지는 미얀마의 정치적 국면 속에서 부부의 심리를 전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한국에서의 쉽지 않은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두 사람의 심리가 관찰과 극적 연출을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달된다. 그리고 우리는 투철한 활동가의 전형이 아니라, 흔들리고 비틀리면서도 자신들의 노력을 이어가는 인물들의 슬픔과 고뇌가 담긴 얼굴을 마주한다. 그 얼굴에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윤리적 실천의 시작일 것이다.
임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