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일상 속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이라는 비일상이 침범했을 때 일상과 비일상이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평화롭게 시작한다. 햇살 내리쬐는 맑은 날 다리 수술을 마친 감독이 거실에 편하게 누워 있고, 그 곁에는 고양이가 함께 한다. 평화로운 풍경이 어쩐지 이상하다. 집 창문은 깨져 있고, 거리의 사람들은 이동 중이다. 곧 감독은 부모님 집으로 이주해 그들과 함께 생활한다. 노부부의 일상은 여느 때와 같다. 함께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물건을 고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떠난 후 남겨진 동네 고양이와 개를 돌본다. 아리나 막시멘코 감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일상의 차원에서 기록한다.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거나 러시아 공격의 문제를 알리는 방식보다 전쟁이 발발한 후 감독 자신과 노부모의 하루하루의 일상을 담는다. 별다른 사건 없던 노부부의 무심한 일상에 총성이 가까워질수록 일상에 잔잔한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떠나야 할지 남아 있어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는 림보 상태가 지속된다.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판단 불가의 불확실한 혼돈 상태에 주목한다. 림보는 또한 지옥의 첫 관문인 단테의 인페르노를 연상케도 한다. 전쟁 장면 하나 없이 잔잔한 일상 리듬 속에서 균열을 드러낸 영화는 이 그 어느 전쟁 영화보다 서늘한 가족 영화이다.
알리나 막시멘코
와토리키 공동체의 원주민 장로가 말한다. “여기서 제 모습을 촬영하세요, 그런데 정말로 우리의 동맹이 될 건가요?” 그의 질문은 공동 감독 에릭 로샤와 가브리엘라 카르네이로 다 쿤하가 촬영 내내 품고 있었던 화두와 연결된다. 〈추락하는 하늘〉는 브라질 아마존 와토리키 공동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부족의 샤먼인 다비 코페나와가 이끄는 주민들이 총기, 활, 봇짐을 들고 천천히 카메라를 향해 걸어오는 하염없이 긴 롱테이크 쇼트로 영화는 시작한다. 시각적으로 정교하고 형식적으로 엄격한 이 영화는 설명을 자제하고 인간과 자연 생태계와의 연결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독백, 원주민들의 일상 활동, 관찰 양식의 콜라주를 유려하게 섞는다. 몰입감이 충만한 사운드스케이프, 자연의 소리들을 수록한 사운드 디자인은 원시 세계의 본성에 관한 진실성에 기여한다. 의견이나 대화에 대한 편집, 검열을 거부하고, 원주민의 세계관을 반영하면서 밤하늘과 자연 풍경을 교차하는 영화의 전략은 문명의 침입(개발을 위해 들어온 광부들)에 의해 위협받는 세계의 위기를 징후적으로 묘사한다. 반(反) 유럽적이면서 토착민의 목소리를 옹호하려는 동기로부터 출발한 이 영화에서 에릭 로샤 감독은 3세계 탈 식민주의 영화의 신화적 존재인 아버지 글라우버 로샤의 유산을 계승하여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이원론을 무너뜨린다.
에릭 로샤, 가브리엘라 카르네이로 다 쿤하
영화는 감독이 속한 가족의 홈비디오에서 시작한다. 홈비디오 속 가족은 평화롭고 여유롭고 행복하다. 조모는 우아하고 조부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가족이 함께 여가를 즐긴다. 익숙한 홈비디오 풍경이다. 영화는 가족 여행이나 특별한 행사를 기록한 개인 아카이브 홈비디오를 다루지만, 사실은 그 이면의 가족의 실체를 담는다. 또 다른 시간 축으로 현재 감독의 할머니가 과거 홈비디오를 보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때 홈비디오는 추억을 불러오거나 기억을 증빙하는 자료가 아니다. 이와는 다소 무관하게, 홈 비디오는 오히려 기록을 통해 기록되지 않고 기록에 담겨지지 않은 그녀의 또 다른 기억을 촉매하며 기록 이면의 삶을 불러온다. 영화는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기억을 서로 대면시켜, 행복을 연출하는 홈비디오 영상과 그 이면에 담기지 않은 가정 폭력, 8mm 거친 화면과 그 화면 너머로 말을 건네는 조모의 모습을 겹쳐놓으면서 기록의 단면과 그 이면의 다면적 현실을 일깨운다. 영화는 점차 기록과 증언과 진실의 역학을 심리적 형상으로 변형하고 확장한다. 그리고 영화는 가족사나 과거사에 머물지 않고 지금 현재도 진행 중인 드러나지 않는 가정 폭력에 대해 사회적 목소리를 낸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영화 제목에 남다른 시선이 간다.
아니카 메이어
영화는 팬데믹으로 영국이 3차 락다운을 선포하고 극장이 계속 문을 닫은 상황에서, 샘과 마크, 두 배우는 GTA(Grand Theft Auto)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다. 둘은 도시를 배회하며 차를 뺏고 사람을 총기로 난사하는 범죄형 샌드박스 게임 안을 어슬렁거리다 거대한 공연장을 만난다. 둘은 즉흥적으로 햄릿 공연을 기획하며 게임 초보 감독을 초대해 공연 기록을 시작한다. 폭력이 난무한, 아니 폭력이 전부인 이 게임 세계 안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공연이 과연 가능할까? 말하기도 전에 총기를 난사하고, 햄릿과 해리포터가 헷갈리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익명의 게이머들 속에서 햄릿 공연은 그 자체로 존재와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걸고, 하느냐? 마느냐?에 질문을 번번이 던진다. 영화는 게임성에 연극성을 더하고, 가상현실에 실제 현실을 반영하면서, 웃음과 희망. 시련과 좌절 그리고 감동을 선사한다. 게임에 연극과 영화가 접속한 이 실험적이고 낯선 영화는 전적으로 게임 내부에서 촬영되고 게임 내부 아바타로 진행된다. 그러나 온라인 세상이 오프라인과 무관할 수 없고,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대체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연극과 게임과 영화가 같을 순 없다는 자각 속에서 영화는 GTA 세계관 속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공연을 창조하고 기록한다.
피니 그릴스
샘 크레인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의 탄광촌인 사북에서 광부와 주민들이 임금 착취와 인권 유린에 항의하며 시위에 나선다. 같은 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약 한 달 전의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곧 경찰과 계엄군의 표적이 되어 수개월 동안 처참하게 짓밟히고, 여전히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선이 굵은 시사적 다큐멘터리로 의미심장한 족적을 남겨 온 박봉남 감독은 오랜 인터뷰와 방대한 조사를 통해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며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가혹한 노동 환경 아래 고통받은 광부들의 삶을 조명하고 그들을 폭도로 매도한 국가 폭력의 야만적 양태를 고발하는 한편, 〈1980 사북〉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를 회복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함께 조명한다. 분노한 광부들의 항쟁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적 폭력을 둘러싼 논쟁,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고 사과하는 관계자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가장 큰 책임자이자 사과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국가가 여전히 침묵하는 가운데, 〈1980 사북〉의 제작진과 등장인물들의 여정은 역사의 상처를 회복하고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성찰로 우리를 초대한다.
박봉남
영화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귀향한 최현삼의 일상을 담는다. 몇 해 전 부모님이 동시에 치매에 걸리셨고, 나이 든 분들이 대다수인 시골 마을에서 부모님을 돌보면서 부모님을 돌보는 방식대로 돌봄 노동 회사를 기획하고 설립했다. 평생 농사를 하신 분들이니 이들의 삶의 패턴을 고려한 돌봄 방식이었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최현삼 씨의 노동과 케어팜을 다루지만, 영화의 매력은 이 케어팜의 뮤즈이자 빌런인 최현삼의 어머니에게 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대하는 그의 모습에 있다. 어머니의 말과 행동에는 살아온 세월과 자식에 대한 바람이 묻어 있다. 기억은 잃어도 몸이 기억하는 농사일과 자식 끼니를 챙기는 모습, 그리고 그런 노모를 챙기며 일하는 중년의 아들은 삶에 대한 일깨움을 준다.
심하은
〈Bitter Cells〉의 난소암 투병을 시작한 감독의 두 가지 여정을 다룬다. 자신과 같은 병을 지녔거나 그로부터 생존한 이들을 만나는 여정, 그리고 그녀의 투병 사실을 모르는 어머니에게 알리기까지의 여정이 그것이다. 두 큰 갈래의 이야기는 여성의 몸과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려는 감독의 노력을 통해 마침내 연결된다. 그리고 우리는 여성들과 그녀들의 몸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편견과 억압과 동시에, 서로를 위로하고 이해하는 비범한 자매애의 순간들을 목도한다. 길지 않은 분량 속에 두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성취는 감독의 재능과 동시에 진실함이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다른 이들과의 대화를 마치 자신과의 대면인 듯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면들은 매우 인상적이고 큰 여운을 남긴다.
박희주
라틴어 코나투스(Conatus)는 ‘노력'으로 주로 번역된다. 많은 서구의 철학자들이 코나투스에 관해 말했지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스피노자다. 그는 이 개념을 인간과 사물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라 정의한다. 자신의 본질적 덕과 욕망을 살피길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 노력은 자신을 부정하고 맹목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동시대의 자기 계발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소영의 노력〉의 주인공, 소영의 노력이 바로 그렇다. 오재형 감독은 자신의 신작에서 장애를 안고 무대에 오르는 한 무용수의 여정을 따라간다. 소영이 원하는 좋은 공연은 타인과의 비교나 경쟁을 통해 달성되지 않는다. 자신의 몸과 대면하고, 자신의 마음과 욕망이 이끄는 길을 따르는 것, 그것이 소영이 취하는 노력의 핵심이다. 감독은 연습의 고단함과 공연의 희열, 그리고 청년 장애 여성이 영위하는 일상의 고민을 포착한 장면들과 함께 주인공인 소영이 스스로를 기록한 영상들을 세심하게 병치한다. 타인의 역경과 열망을 열린 태도와 수평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그 노력은 한 청년 예술가에 대한 아름다운 헌사로 이어진다. 자기 계발 담론에 취한 한국 사회에 던지는 경종이기도 하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중에는 제작진이 직접 만든 배리어프리 버전도 함께 상영된다.
오재형
마트에서 식품으로 만나는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도 동물 보호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영화는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들이 열다섯 마리의 소를 구조해 소 보금자리(Sanctuary)를 만들어 가는 좌충우돌 여정을 담는다. 처음 그냥 소에서 시작했다가 소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임시 축사를 제공받고, 그중 여섯 소를 선택하고, 이들 영구 축사를 마련하기 위해 시골 마을 폐교를 다니고, 그리고 직접 축사를 지어 소를 옮겨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기까지 여정은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 영화는 이 과정에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들이 소를 돕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이들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후원 속에서 이 여정을 해내갈 수 있는지를 담는다. 영화는 이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세상은 이런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조금씩 인식을 변화시키고 보다 나은 세상으로 향해가는 것이다. 영화는 말한다. 자기 생각에 갇히지 말고, 일단 “만남”을 가지라고. 소를 농경사회에서부터 우리 인간을 위한 소비재 혹은 산업 동물로 간주하던 생각에서 이들도 함부로 죽임을 당하지 않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살 권리가 있는 존재임을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층 깊어질 수 있다. 마을 어르신들과 비건 청년들이 함께 만든 소 보금자리를 먼저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임중완
영화는 네덜란드로 입양된 미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기존 입양 서사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입양된 미카가 한국 부모를 찾는 서사가 아니라 미카(당시 이름은 미옥)를 입양 보낸 한국 부모가 미카를 찾는 이야기이다. 여느 입양 서사의 갈등과는 달리, 오히려 미카는 자신을 찾아온 부모가 낯설고 거리를 두고자 한다. 아들 선호 사상으로 딸을 셋 낳고 아들을 낳기 위해 넷째 미카를 낳은 후 시댁에서 아이를 버렸다. 딸이라는 이름으로 버려졌으나, 미카는 네덜란드에서 퀴어로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고 지금의 파트너와 정착을 한 중이다. 영화는 그런 미카가 한국 부모를 방문에 소통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통을 시도하는 과정을 담는다. 언어도, 감정도, 문화도, 심지어 가족관과 성 정체성도 다른 이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담는다. 한국의 전형적인, 그러나 모성애 강한 엄마의 모습은 여러 생각을 불러온다. 영화는 입양 서사에서 점차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조타 문 감독은 입양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섬세한 묘사와 배려로 미카와 미카 가족을 담고 있다. 이로 인해 입양 서사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문조타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의 탄광촌인 사북에서 광부와 주민들이 임금 착취와 인권 유린에 항의하며 시위에 나선다. 같은 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약 한 달 전의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곧 경찰과 계엄군의 표적이 되어 수개월 동안 처참하게 짓밟히고, 여전히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선이 굵은 시사적 다큐멘터리로 의미심장한 족적을 남겨 온 박봉남 감독은 오랜 인터뷰와 방대한 조사를 통해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며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가혹한 노동 환경 아래 고통받은 광부들의 삶을 조명하고 그들을 폭도로 매도한 국가 폭력의 야만적 양태를 고발하는 한편, 〈1980 사북〉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를 회복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함께 조명한다. 분노한 광부들의 항쟁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적 폭력을 둘러싼 논쟁,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고 사과하는 관계자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가장 큰 책임자이자 사과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국가가 여전히 침묵하는 가운데, 〈1980 사북〉의 제작진과 등장인물들의 여정은 역사의 상처를 회복하고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성찰로 우리를 초대한다.
박봉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