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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츠 에미히홀츠
폭탄의 비행 시간은 절대적 무(無), 즉 잠시 후 모든 가능성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제로 아워’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시작되기도 전에 끝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에 맞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란 베를린에서 시작해 아로망슈, 로마, 브로츠와프, 괴를리츠, 파리, 볼로냐, 마드리드, 부에노스아이레스, 아틀란티다, 몬테비데오, 멕시코시티, 브라질리아, 도쿄, 사이판, 티니안, 도쿄, 샌프란시스코, 댈러스, 빈츠를 거쳐 다시 멕시코시티와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건축의 여정이다.
“폭탄이 투하된 영공을 상상한다. 폭탄은 폭발 지점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지만, 그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고 막을 방도는 없다. (...) 폭탄의 비행시간은 다음 순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모든 가능성으로 구성된 절대적 무(無)이다.” 스스로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파괴하는 전쟁 무기의 시간성을 간파하는 문구가 제시되고, 이윽고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의 조각상이 보인다. 조각상은 곧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의 내장을 파헤칠 독수리를 바라보고 있다. 하인츠 에미히홀츠는 베를린에서 출발하여 유럽 각국과 미국, 일본, 남미를 경유하여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모은 건축물들을 모아, 고대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가장 파괴적인 근대사의 은유로 만든다. 2차 세계대전의 폭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유럽의 건물들과 전후 유럽 이주민들이 세운 남미의 건물들, 그리고 원폭 투하의 비극을 기리는 구조물을 포함한 〈활주로〉의 대상들은 참혹했던 20세기의 근대성, 전쟁과 자본, 국가, 이데올로기가 착종된 역사에 대한 증언이자 파노라마다. 하인츠 에미히홀츠와 오랫동안 협업을 한 독일 밴드 크라이들러(Kreidler)의 전위적이면서 뉘앙스 가득한 음악이 적소에 활용된다. ‘사진과 초월’ 시리즈의 일부이자, ‘모더니즘의 도피’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하인츠 에미히홀츠Heinz EMIGHOLZ
하인츠 에미히홀츠는 영화,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예술과 영화의 경계를 탐구한다. 초기 연출작은 건축의 입장에서 실험 영화를 제작하며, 『버라이어티(Variety)』에서 "건축의 가장 정확한 관찰자"라고 소개되었다. 주로 건축 모더니즘의 기원, 운명, 역사와 종말을 영화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