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기후위기 시대, 코로나 팬데믹의 와중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생태적 가치와 평화를 염원하며 남북 접경지역 파주에서 대마 농사를 시작하지만 대마가 마약으로 분류되는 한국에서 여러 제약이 따른다. 풀을 필요로 하는 아픈 사람들, 풀을 사랑하는 친구들은 풀과 함께 불법 존재가 되고,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한 나라에서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REVIEW
전직 의사 권용현은 대마의 합법화,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단체의 회장으로 활동하였으나 어느 날 아픈 환자를 돕기 위해 대마초를 권했다가 감옥에 다녀오게 된다. 토종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농부 천호균은 DMZ 접경 지역에서 대마 씨를 뿌리며 평화와 화해, 공존의 메시지를 전파하려 한다. 생태주의자, 학자, 시인, 의사, 음악가, 건축가 등 대마의 생명력과 효능에 대해 기왕의 통념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활동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시 읽는 시간〉(2021), 〈재춘언니〉(2022)에 이어 이수정 감독의 비전은 사회적 금기에 대한 도전으로 향한다. 그러나 〈풀〉은 1970년대 이래 대마를 위험하고 불경한 것으로 단죄해 온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는 대안적 삶의 아름다움, 비인간과 공존하는 것의 가치에 초점을 둔 이야기이다. 따라서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풀이다. 한낱 식물을 죄악시해 온 국가의 법, 윤리에 저항하는 이 용감한 영화는 길섶에 핀 들풀의 아름다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한다. 때로는 가치전복적이고, 때로는 암울하며, 때로는 희망을 걸게 하는 풀 이야기는 총 2부로 기획되었고, 이 영화는 1부에 해당한다.
DIRECTOR'S NOTE
인류사에서 인간의 의식주에 함께 해오며 아무 문제가 없던 식물이 위험한 마약으로 취급된 지 50년이 흘렀다. 이제 대마초의 합법화, 비범죄화가 세계적 추세이지만 한국 사람들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무지는 무관심 혹은 오해를 낳고, 때로는 사회적 공포와 혐오를 조장해 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것이 어디 이 풀 뿐이겠는가. 사람들이 서로 만나지 못할 때 우연히 싱그러운 녹색의 끌림을 따라갔던 나는 풀 친구들의 평화를 기원하며 한해살이 풀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