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훈
World Premiere
농부가 땅을 간다. 물이 흐른다. 벼가 자란다. 논으로 가는 벼는 바람과 비, 햇빛을 받고 자란다. 생명을 품는다. 벼가 익는다. 잘려나간다. 겨울을 건너 다시 생명을 틔운다. 경기도 파주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이원경)는 벼와 함께 바쁜 일상을 보낸다. 작은 볍씨가 ‘모’가 되어 흙, 햇빛, 바람, 물을 만나 벼가 된다. 벼농사의 사계절이 펼쳐지면서, 벼의 생태적 변화와 농민들이 가지는 현실적 문제들이 드러난다.
한국인의 주식인 밥이 되기 전, 볍씨에서 볏단에 이르는 벼의 생애를 온전하게 담아내는 <벼꽃>의 토대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의 아름다움과 농부들의 숭고한 노동에 대한 예찬이다. 하지만 조금 더 세밀한 곳에 놓인 카메라의 시선이 흥미롭다. 마치 밥풀처럼 보이는 하얀 벼꽃, 강 같기도 하고 바다 같기도 한 논의 표면, 조용히 논두렁 곁에 선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내는 소리, 찰박거리는 물에 비친 햇살의 눈부심과 뿌연 수면 아래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벼, 농부의 걸음을 일체화시키는 관찰의 시간에서 찾을 수 있다. 농부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노동할 동안 벼들도 자연과 공존하거나 투쟁하면서 자라난다. 오정훈 감독 또한 그들 곁을 지키면서 관찰하고 기록한다. 어쩌면 이 단순한 행위로 인해 <벼꽃>은 인내와 끈기 외에는 결코 닿지 못할 영역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마른 땅을 갈아엎고 물길을 열어놓아 논이 되어가는 과정을 비롯해 이 영화 안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반복과 순환의 주기는 교양의 측면에 국한되지 않고 배움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사람과 자연에 주어진 탄생과 죽음의 소멸되지 않는 시간이 소비와 유통을 거치면서 사회 시스템에 의해 위협받더라도 재배와 생산은 반복될 것이라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진리가 이 다큐멘터리의 근간이다. [박인호]
오정훈Oh Jung-hun
1994년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집단 푸른영상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했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미디어교육실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다큐멘터리 제작과 더불어 인디다큐페스티발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노래하고 싶어 (2012)
새로운 학교 – 학생인권 이등변삼각형의 빗변 길이는? (2011)
호주제 폐지, 평등가족으로 가는 길 (2001)
낙선 (2000)
세 발 까마귀 (1997)
약속 하나 있어야겠습니다 (1995)
Contribution & World Sales Oh Jung-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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