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기계음과 함께 손톱을 짧게 정리하는 손이 보인다. 그 손 위로 피아노 소리가 겹치고, 같은 손이 건반에 놓인다. 연주는 곧 멈추고, 짧은 탄식과 함께 혜경의 얼굴이 드러난다. 혜경은 감독의 어머니다. 삼십 년 전 피아노를 그만두었던 그는 다시 건반 앞에 앉는다. 영화는 혜경과, 독일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는 주은의 공간을 오간다. 세 사람의 손이 겹치는 자리에서, 영화는 몸이 어떻게 시간을 간직하는지 묻는다.
REVIEW
인간과 인간 사이, 현재와 과거 사이에 놓인 피아노라는 음악적 사물의 쓰임을 서정적으로 환기시키는 인상적인 단편이다. 감독의 어머니 혜경은 30년 만에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지난 삶을 떠올린다. 주은은 클래식 음악의 오랜 전통이 자리한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하며 피아노를 연습한다. 영화는 피아노라는 사물과 악보에 기보된 음악의 흔적, 그리고 인간의 신체가 만나는 현재의 순간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음악의 정동에 접속한다. 서툰 두 사람의 연주는 디제틱 사운드인 동시에 영화의 배경음악이 되어 관객의 기억과 감정 속으로 스며든다. 피아노 소리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몸, 그리고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여성을 느슨하게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세월을 견뎌낸 혜경의 굳은 손과 새로운 음악의 세계 앞에 선 주은의 가녀린 손이 건반 위를 부지런히 오간다.
DIRECTOR'S NOTE
어머니의 오래된 일기장에서 시작되었다. 그 안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자신을 붙들기 위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오랫동안 다르다고 여겨온 어머니와 내가, 같은 결의 시간을 지나오고 있었다는 것을 일기장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삼십 년 전 피아노를 그만두었고, 다시 건반 앞에 앉는다. 악보를 따라가는 눈과 반복하는 손을 카메라에 담으며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멈춘 줄 알았던 시간이, 몸 안에서는 어떻게 이어져 왔을까. 이 질문은 독일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는 주은에게로 이어졌다. 주은에게 연습은 건반을 어떻게 누르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의 차이를 듣는 일이다. 삼십 년을 떠나 있던 손과, 매일 그 차이를 듣는 손. 두 사람의 손에 쌓인 시간은 다른 밀도를 가지지만, 둘 다 피아노 앞에서 자신의 시간과 마주하고 있다. 서로 다른 시기와 조건 속에 놓인 여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쌓는 자리에서, 시간이 몸을 통과하는 방식을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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